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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8대 대선결과 분석과 평가' 토론회
작성자 웹마스터
작성일 2014/02/10 조회수 873


김현미의원은 24일, 국회의원회관 1세미나실에서 개최된 '평가와 전망' 그 첫 번째, '18대 대선결과 분석과 평가' 토론회 발제자로 '민주당의 대선전략 및 선거운동 평가'를 발제하였습니다. 아래 그 전문을 게재합니다. (편의를 위하여 글 마지막에 파일로도 올려두었습니다.)



민주당의 대선전략 및 선거운동 평가

 

발제자 국회의원 김현미

 

 

들어가며

 

선거는 기본적으로 경선 때는 캠프가본선 때는 당이 치르는 것이다선거의 주체는 당이다그런 점에서 이번 대선의 실패는 민주당의 실패라고 할 수 있다선거의 주체인 민주당이 대선을 어떻게 준비해왔고끌어갔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이번 발제의 목표이다.

 

선거운동은 일정한 전략 하에 캠페인을 벌여 지지자를 확대동원하는 것이다그렇다면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의 전략기조는 무엇이었는가?운동의 주체인 조직상태는 어떠했고 캠페인은 적절했는가선대본부장이었지만 저 또한 그 전모를 알지 못한다저뿐만 아니라 유감스럽게도 당의 어느 누구도 이번 선거운동의 전체를 알지 못한 채 선거가 끝났다.

선거기간 내내 우리끼리 주고받던 그럼 이건 누가 결정하는 거야?’‘우리가 결정하면 집행은 되는 거야?’라는 얘기가 이번 선거를 상징한다고 본다.

어떻게 이런 선거운동이 이뤄졌을까

전략기획조직캠페인후보를 중심으로 되짚어본다.

 

 

민주당은 무엇을 했는가

 

1. 대선의 출발 - 4.11 총선의 실패와 혼선

이번 대선은 4.11 총선의 연장에 있었다두 선거가 시기적으로도 가까웠고선거를 지배했던 시대정신도 일치했기 때문이다따라서 총선을 어떻게 치렀는가총선 이후 제기된 과제들을 양당이 어떻게 극복했는가는 대선을 위한 기본적 준비라고 할 수 있다그런 점에서 성공한 새누리당과 실패한 민주당의 준비는 너무 달랐다.

 

새누리당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 후 당을 4.11 총선과 대선 대비체제로 전면적으로 바꿔냈다한나라당은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선출로 총선을 시작했고박근혜후보는 대선을 시작했다.

 

당명색깔강령인물조직 모두를 MB가 아닌박근혜대선후보 중심으로 재편했다.

경제민주화와 복지정책을 선점하여 중간층으로 세를 넓혔고당의 로고와 색깔까지 과감히 바꿈으로써 MB와의 차별화를 가시적으로 만들어냈다열세로 보였던 SNS 분야에서도 속칭 십알단초기행태를 통해 만회를 모색해갔다청년을 발탁하고 지역구와 비례대표에 각 분야별,직능별로 대선을 책임질 인물들을 고루 공천하여 이들을 통해 해당분야에 대한 우군화를 가속화했다박근혜 후보는 전국을 시구 단위로 훑으며 대국민 접촉을 강화했다.

 

한마디로 중앙과 지역정책과 분야, on과 off 모두에서 한판 대선승부를 준비하는 총선이었고승리했다총선승리 이후 새누리당에게는 준비된 레일 위를 달리는 일만 남아있었다.

 

반면 민주당에게 2012년은 바쁘고 소란스러웠지만 대선을 위해 남긴 게 없는 한해였다국민경선을 세 번이나 치렀다국민경선은 조직적 기반이 취약한 민주당이 국민적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길이지만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일부를 제외하고는 당의 조직적 확대로 만들어내지 못했다.수백만명의 선거인단 명부는 쌓였지만 그것은 단지 수집된 명단에 불과했다.

 

정책이나 홍보인물 면에서도 새로운 변신확장을 만들어내지 못했다특히 국민경선 방식의 지역구 후보선출과 방향성없는 비례대표 선정은 특정분야는 과대 대표되고 특정분야는 과소 대표되는 결과를 낳아 총선공천이 당의 지지기반을 확대하는 계기가 되지 못했다.

 

정책적 혼선과 갈등수도권과 젊은층 중심의 선거운동, SNS 중심 홍보전략의 한계 등 과제를 남기고 민주당은 총선에서 패배했다그러나 총선패배 후 민주당은 한명숙대표가 퇴진하는 것 외에는 어떠한 숙제도 해결하지 못한 채(안한 채대통령선거를 맞았다.

 

총선 이후 당대표가 두 번 바뀌었다. 2~3달 간격으로 지도부는 바뀌고새 지도부는 눈앞에 닥친 당내선거 치러내기에 바빴다결국 누구 하나 차분히 앉아서 총선을 점검하고 대선을 준비하지 못했다.(안했다.)

 

2. 전략 부재

민주당은 411일 총선이 끝난 뒤 69일 이해찬 당대표 선출, 916일 문재인 대통령후보 선출, 927일 중앙선대위 발족, 1123일 미완의 단일화에 이어 1127일부터 22일간의 본격적인 대통령선거운동에 돌입했다이해찬대표 선출 후 111일만에 선거운동에 돌입한 것이다즉 민주당에게는 4개월 남짓한 111일 동안의 선거운동 준비기간이 있었다그 111일 동안 민주당은 과연 어떤 준비를 했는가.

 

이해찬대표 체제는 대선후보경선이 한창 진행 중이던 83일에야 추미애최고위원을 단장으로 하는 대선기획단을 출범시켰다.

 

대선기획단은 중앙선대위 발족 전까지 선거기조와 전략 등 밑그림을 그리고 준비하는 역할을 해야 했다그러나 기획단은 경선과정이라는 이유로 인적구성조차 신속히 마무리하지 못했고뒤늦게 조직구성은 마쳤지만 특별한 결과물도 없이 중앙선대위 체제로 전환되었다대선기획단 내부적으론 전략개발을 위한 중심도 세워지지 않았다그러다보니 가장 기초적인 여론분석과 유권자 분석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분석에 기초한 정책조직홍보전략 등은 물론 준비되지 못했고그나마도 이해찬대표 퇴진논란 속에서 흔들리다가 10월 본선거 국면을 맞았다.

 

    기획본부 A팀장 인터뷰 

  “10월 초순 업무를 시작하며 당으로부터 인계받은 여론조사 등 분석자료라고는 단 한차례 실시한 FGI 분석자료 하나가 전부였다당이 자체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와 정세분석 자료가 전무함에 따라 실무진은 타 기관의 공개된 분석 자료와 에 의존한 초기 전략수립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전략기획 부재상황은 본선 선거대책위원회가 출범한 이후에도 계속되었다후보단일화와 2030 투표율 70%, PK득표 40%가 전략이라면 유일한 전략이었다그 외 지역세대계층별 유권자 분석이 없으니 이에 따른 전략이 나올 수 없었고맞춤형 정책이나 홍보유세일정을 만들어낼 수 없음은 당연했다.

 

3. 중심이 없는 캠프

916일 선출된 문재인후보는 27일 중앙선대위를 발족했다선대위원장이 10명인 수평적 구조 선대위였다또한 캠프를 민주캠프시민캠프,미래캠프로 삼분화했고각 본부를 더욱 세분화하여 실무진 포함 약 1천명이 상근하는 매머드급 선대위 체제였다.

 

그러나 수평적 의사결정 구조는 결국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라는 동전의 뒷면을 드러내고 말았다.

 

대통령선거는 특성상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보고서가 제출되고각 본부로부터 수많은 제안이 쏟아져 들어오게 된다이들은 선대위원장회의,선대본부장회의를 통해 논의되고 결정집행되어야 한다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논의는 무성했지만 누구도 결정하지 못했다어쩌면 아무도 안했을 수 있다기막히게도... 동네 구의원 선거에도 있는 지도부가 없이 대통령 선거를 치른 것이다.

 

예를 들어 50대 유권자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선대본부장 회의에서 ‘50대 위원회구성을 결정했음에도 끝내 집행되지 않았다. ‘어느 단위에서 추진하느냐’‘모르겠다만 반복하다가문재인후보가 50대를 위한 정책발표와 방송연설 한번 하는 것으로 이 제안은 사장되고 말았다.

 

    기획본부 B팀장 인터뷰 

  “‘제안논의지시점검채근독려성과라는 가장 기본적 절차가 실종됐다집행할 수 있는 의사결정을 도대체 누구에게 요구해야 하는지 몰라 답답했다그럴수록 후보자의 의사결정 하중은 커져만 갔고후보자에게 각기 보고해서 후보자가 각기 결정하는 비민주적 캠프 운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상황본부 C팀장 인터뷰 

  “친노 9인방이 물러났으면 강력한 총괄 타워가 있었어야 했다정세균고문이 총괄을 맡기 전까지 의사결정을 전혀 하지 못하는 체계였다차라리 친노 9인방이 존치됐으면 이런 결과까지는 초래하지 않았을 것이다

 

본부별본부내 업무조정도 여의치 않았다같은 업무가 캠프별로 중복되기 일쑤였고같은 캠프 내에서도 A팀이 수행하던 업무가 갑자기 B팀으로 이관되기를 반복업무를 두고 치열한 신경전이 있었다선거운동 막바지까지 혼선은 계속되었다모두 선거총괄 책임자 부재가 불러온 사태였다제가 담당했던 소통2본부도 부끄럽지만 예외가 아니었다.

 

    기획본부 D팀장 인터뷰 

  “9월부터 정책위원회와 민주정책연구원 사이에 정책 주도권을 놓고 갈등이 있었다선대위 체제로 전환된 이후에는 미래캠프와 공감본부공감 1본부와 공감 2본부의 갈등으로 이어졌다정책의 이슈화와 지역정책 발굴을 위한 논의는 제대로 시작할 수도 없었다.”

 

이같은 지도부 공백사태는 1123일 안철수후보 사퇴 이후 절정에 달했다.

안후보측을 문재인후보 선대위에 참여토록 하기 위해 선대위원장들이 총사퇴를 결정함으로써지도부가 선대본부장회의로 내려왔다전국선거 경험이 많지 않은초재선들이 대부분인 선대본부장회의는 유감스럽지만말그대로 봉숭아학당이었다.

그렇게 금쪽같은 초반 열흘을 허송했다선거 열흘 앞두고 정세균전대표가 상임고문으로 오고서야 비로소 선대위가 작동했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4. 전국 총동원 체제 실패

이번 선거운동의 중심은 서울과 PK였다특히 안철수후보와 단일화 때문에 초기는 호남에 집중해야 했고본선 동안은 서울을 벗어나기 어려웠다그러다보니 자연히 경기충청강원에 대한 투여가 적었고